Why so serious?
남의 글 2008. 9. 14. 17:36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인류가 살아가는 가장 큰 명제 중 하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일 것이다.
성경에 빗대에 비유하자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선악과를 따먹은 죄를 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이후 인간은 수없이 이 명제를 반복한다. 인류 최초의 맏아들은 동생을 죽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그 자손들은 자신을 추방한 신의 외아들을 죽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애초에 낙원에서 추방하면서 인간에게 내려진 명제는 애매모호하고 해석하기 힘들다. 추방에 따른 처벌인 거 같기도 하고 축복인 거 같기도 하고.
타이타닉을 제외한 모든 박스 오피스 스코어를 뒤집어 엎어버리고 있는 이 영화의 핵심 역시 이 명제와 맞닿아 있다.
애초에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화제가 된 것은 배트맨이 아니라 조커였다. 배역을 맡은 이가 영화 개봉을 앞두고 운명을 달리한 것도 큰 이유겠지만,
1930년대 대공황기부터 배트맨을 보아온 사람들 중 가장 뇌리에 남아있는 캐릭터 중 하나가 바로 '조커'이기 때문이다.
각종 영화와 소설 등에서 수없이 많은 악역들이 판을 쳐대지만 사람들이 당혹해 하는 건 바로 이런 캐릭터이다.
조커라는 캐릭터가 사람들에게 더욱 큰 공포를 전달하는 이유는 그가 가진 '악성(惡性)'이 익숙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다시 성경에 빗대에 말해보자면,
인간의 죄악이란 것은 그것이 타당하건 아니건 간에 항상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왔다.
최초의 인간 남녀는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 혹은 갑갑하고 무료하며 안락하기만 한 전원생활에 싫증나고 절대적 존재에 대한 막연한 반항심에,
카인은 동생에 대한 질투에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를 위해서,
그 이유가 윤리적으로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인간이 저지르는 행위, 특히나 악행은 선행보다 더 많은, 때로는 더 설득적인 '이유'를 가진다.
사람은 '절대적 악'에 직면할 때 더 큰 공포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건 그 '악'에 이유가, 논리가, 혹은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이 공포와 경악을 느꼈던 캐릭터가 이전 영화에서 하나 있긴 하다.
스탠리큐브릭의 제목조차 괴상한 '시계태엽장치의 오렌지(A Clockwork Orange)'가 나왔을 때 사람들이 경악하고 X등급을 주고 상영금지를 시킨 건
주인공인 알렉스가 행하는 악행들이 더 폭력적이고, 더 비윤리적이어서가 아니었다.
조커도 알렉스도 사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악행들은 '상대적으로' 다른 악역들에 비하면 덜하면 덜했지 더 하지는 않다.
인간 전체로 본다면야 어두운 밤을 밝히기 위해 백주대낮에 남의 나라에 쳐들어가서 다 쓸어버리고 평화가 어쩌구 하는 게 인간이고
600명도 아니고 600만 명을 가스실로 보내서 죽이고 또 그 시체의 기름으로 비누를 만들어 쓰는 게 인간일지언데
단순히 악행의 양적인 면만을 봤을 때 조커나 알렉스는 뭐 그저그런 평균 수준에 불과한 악당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공포를 주는 것은 그들의 악행에는 이유라고는, 설득력이나 나름대로의 논리같은 건 하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쉽게 그냥 '절대적 악'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해치워 버리면 되는 건지도 헷갈린다. 왜?
앞서 말했듯이 절대적인 악행의 양만으로 보면 조커나 알렉스같은 미친 싸이코패스처럼 보이는 이들보다 그냥 인간들이 저지른 악행이 더 크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부의 은행 강도 장면에서 보이듯이 조커는 대량학살을 하지 않는다. 그냥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서로 죽이게 만들 뿐.
그가 스스로를 'The Agent of Evil'이 아니라 'The Agent of Chaos'라고 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 대립각에 서 있는 배트맨과 보는 사람들의 고민, 불편함이 시작된다.
배트맨이 행하는 '정의의 집행'이라는 것 역시 법이라는 인간의 테두리와는 동떨어진 것이고
(비긴즈에서도 나왔듯이 각종 장비와 설비를 위한 밀수, 세금포탈, 문서위조에 밀입국에 어쩌면 업무상 배임까지...)
그렇다면 배트맨이 지키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던져질 수 밖에 없다.
모든 인간이 악에 물들어 있고 또 모든 인간이 그 악에 대해서 타당하고 설득력있는 이유가 있다면 눈감고 입을 막고 살아가는 판인데,
'고작해야' 한 도시에서 은행 좀 털고 마약 좀 뿌리고 사람 몇 명 죽인다고 '절대적 악'으로 규정해서 때려죽일 놈으로 만들어?
뉴스에서는 날마다 인간이 벌이는 전쟁 소식이 들리는데? 그건 기름 때문에, 자원 때문에, 땅 때문이라는 이유가 붙어서 괜찮은 건가?
이런 고민의 반대편에서 아무 고민도 없이 범죄, 그러니까 '인간들이 악이라고 정의해놓은 행위'를 하는 조커가 묻는다.
"Why so serious?"
배트맨과 사람들은 대답하지 못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조커한테 이렇게 열을 낼 이유가 조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트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라'라고 말하는 듯 하다. 뭐 어쩌겠나. 시키는대로 해야지...
실업자가 넘쳐나고 갱과 마피아가 활개치던 끝이 보이지 않는 대공황의 1930년대에 시작된 이 영웅신화에서 가장 강렬한 캐릭터 중 하나인 조커는
1989년의 배트맨에서도 그랬듯이 다크나이트에서도 배트맨의 빛을 잃게 만든다. 애초에 그래서 다크 나이트인 걸지도 모르겠지만...
기사 윌리엄에서 진중하지만 밝은 모습을 보여주던 히스 레저는
'브로큰백마운틴'에서부터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더니 가장 어둡고 음울한 모습을 보여주고는 사라졌다.
뭐 이렇게까지 해대면서 다른 영화를 어떻게 하냐라는 생각도 들어서 뭔가 복잡미묘한 생각도 들지만 아쉬운 일이다.
다음편에서 등장하는 조커 역할에 벌써부터 조니 뎁과 애드리안 브로디가 혈투를 벌이고 있다니 기대해 볼만도 하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잭 블랙이 어떨까 싶은....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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