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는 뭘까...

낙서장 2008. 10. 22. 22:35 |

블로그는 뭘까...

인터넷은 뭘까...

 

아마도 처음에는 개인의 정원 같은 곳일 것이다...

 

내가 관심있는 화분들을 모아두고,

내가 보기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두고,

 

그것에 끌려온 소수의 사람들이 반갑고,

그들이 들려주는 찬사와 관심이 반갑고,

때론 그들의 취향을 반영해 보기도 하고,

그들이 편하도록 해주기도 하고,

 

그러다 그 객들이 많아지게 되는데...

 

그 객들은 많아지다보면,

사진을 찍어가서 이쁜데 있어요 하는 사람

그 정원 앞에서 솜사탕과 아이스께끼를 파는 사람

그 정원 안에서 웨딩 사진을 촬영하는 사진사

그 정원 안에서 나물을 캐가는 아줌마 (여성을 비하하려함이 아님)

정원의 나무나 화분을 사가겠다는 사람

정원의 구조를 베껴서 같은 정원을 만들겠다는 사람

심지어는 몰래 꽃을 파가거나 화분을 들고 가는 사람도 나오게 마련일 것이다...

 

결국은 그 정원에 철조망이 둘러쳐지던, 개장시간이나 입장료가 생기던, 감시카메라가 등장하던

처음 정원과는 다른 어떤 정원이 만들어진다...

 

인터넷은 그 객들이 쉽게 나의 정원에 찾아오게 해주고,

쉽게 나의 정원을 공유할 수 있게 해준다.

 

사실, 남의 노래 가사나 시를 무단 전제하는 것은 불법의 소지가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본인의 느낌을 적어둔 글은 본인의 것이다.

그러한 글을 집 한켠 게시판에 걸어두고 사람들이 찾아와 보게 해둔 것을 누군가 찾아와 책으로 내겠다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마도 그 일이 벌어지기 전에 누군가는 그 게시판을 사진찍어가서 베껴내 무슨짓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이 블로그에 올려둔 사진도

아무런 워터마킹도 해두지 않아 누군가 그냥 휙 가져가서 휙 써버릴 수도 있는 것들이다.

아마도 상업적 매체에서 내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면 참 기분 나쁠 것이다.

기분나쁘다고 하면 거기에 실은 이는 왜 못 가져가게 하지 않았냐며 오히려 대들 것 같기도 하다.

 

하여간...

 

기술의 도움으로 복사가 쉬워진 세상이 되었다.

그 쉬워진 복사로 원작과 복사본이 구별이 안되는 세상이 되었다.

세상은 복사로 점철되어, 원 작자에 대한 예의가 없는 세상이 되었고,

복사하려는 자들은 오히려 복사해주니 고마워해라고 하는 세상이 되었다.

사실 그러다가 원작자들은 의욕을 잃고, 복사할 원본을 만들지 않는 세상이 될 것이다.

 

왜들 모르는지 복사할 기술은 원본을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아마도 쉽게 복사하니까

아마도 다른 것들이 널려있다고 생각하니까

아마도 이거 하나쯤이야 생각하니까

아마도 나만 그러는 것도 아닌데 하고 생각하니까

 

하여간...

 

하나의 정원에 출입금지 말뚝과 철조망이 둘러쳐졌다.

누구의 잘못을 물을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정원에서 있을 법한 일이 벌어진 것이기에...

다만 곁에서 보던 사람으로는 아쉬운 일이다.

 

볼 것이 사라진 것과 아울러, 내 정원에 (안 일어날 확률이 더 높겠지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정원에 대한 예의가

원본에 대한 예의가

남의 수고에 대한 예의가

있었으면 좋겠다.

 

쉽게 복사해서 돌려볼 것과 쉬이 복사하지 말아야할 것에 대한 분별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라디오에 신청곡을 넣으며 '녹음할 거니 앞뒤로 멘트 넣지 말아주세요'란 엽서가 소개되던 시절이 불과 20년밖에 안됐다.

 

기술에 의해 세상은 변해간다.

 

그 속에서 옛방식과 요즘 방식이 섞여 마찰하고, 옛사람과 요즘사람이 섞여 마찰한다. 피할 수 없는 건데, 줄일 수는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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