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방송 아카데미 성우과정 다니던 시절 수업시간에 연습으로 읽도록 했던 시...
확실히... 내가 노력하지 않고서 받는 건, 그것이 대단한 것일지라도 그 가치는 조금 떨어지지 않나싶다. 그것은 아마도 맛은 둘째치고서 사람들이 비싸게 주고 산 와인이 좋은 거다라고 느끼는 감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것이 그냥 사랑받기보다 낫고, 서로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이 더 나은 것일 게다. 서로의 사랑을 걸고서 사랑을 받으니 말이다. (한꺼번에 여러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반칙ㅎ)
하여간... 물론 오늘날의 메시지와 옛날의 편지가 무엇이 좋고 나쁘다를 논할 수는 없다. 각각이 장점이 있으니까. 많은 기회 속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과 적은 기회 속에서 하나를 놓지 않는 것. 그런 차이는 있을 것이다.
내가 사랑한다고 사랑하는 이에게 알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알림에 답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그것에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무엇으로 행복할 것인가. 아마도 사람이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하게 된 사람일 게다. 무엇인가에 나는 너를 갖고 싶다고 전하고, 갖기 위한 노력을 들이고, 그러고 난 다음에 갖게 된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것이 돈일 수도, 지위일 수도, 갖기 힘든 어떤 것이면 될 것이다. 뭐 갖게 되는 과정에서 적법하냐 위법하냐 남을 해치느냐는 다른 얘기일 것이고...
그래서,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있는 이상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 것이다. 문제는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거나,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너무나 쉽게 채워지는 케이스겠다. 그렇게 되면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없어지는 거니까...
하여간,
오늘도 나는 너에게 메시지를 보내나니,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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